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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한글 어디까지 알고 있나요

나랏말이 중국과 달라 한문, 한자와 서로 통하지 아니하므로 이런 까닭으로 어리석은 백성이 이르고자 하는 바가 있어도 끝내 제 뜻을 능히 펴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내가 이를 위해 불쌍히 여겨 새로 스물여덟 글자를 만드니 사람마다 하여금 쉬이 익혀 날마다 씀에 편안케 하고자 할 따름이다. 

세종대왕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 훈민정음 

조선 초기 우리나라는 한자를 빌려 써 실제 사용 중인 우리말을 온전히 표현하기가 힘들었습니다. 

 

한자는 익히기 어렵기도 했죠. 

 

특히 일반 백성들은 쉽게 사용할 수 있는 '글자'가 없어 힘든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습니다. 

 

이에 세종대왕은 한국어를 표현할 수 있는 문자를 만들어 내는데요. 

 

그 문자가 바로 오늘날 우리가 한글이라는 이름으로 알고 있는 훈민정음입니다. 

 

훈민정음은 발성 기관의 모습을 본떠 만들었습니다. 

 

발음할 때 혀뿌리가 목구멍을 막는 모습을 본뜬 기역, 목구멍의 모습을 본뜬 이응처럼 말이죠. 

 

이를 이용해 기본이 되는 첫소리글자를 만들고, 소리의 세기에 따라 획을 추가했습니다. 

 

모음은 하늘과 땅, 그리고 사람을 본떠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이를 서로 결합하여 모음을 완성했습니다. 

 

총 28자로 만들어진 훈민정음은 시대가 변하며 사용되지 않는 자모음인 여린히읗, 반치음, 옛이응, 아래아를 뺀 '한글 맞춤법 통일안'을 1933년 조선어학회에서 제정, 공표하여 24자만 사용하고 있습니다. 

 

한글과 한글날 

훈민정음은 언제부터 '한글'이라는 이름으로 불렸을까요? 

 

훈민정음은 정음, 언문 등의 단어로 줄거나 바뀌어 사용되기도 했고, 구한말에는 국문, 배달이라고도 했습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익숙한 한글이라고 말하기 시작한 것은 일제강점기였습니다. 

 

창시자는 불분명하지만, 학계에서는 주시경 선생이 1912년에 발간한 음운학을 다룬 책 '소리갈'에서 사용된 것을 처음으로 보고 있습니다. 

 

한글날의 기원은 훈민정음 창제 480주년인 1926년 11월 4일, 국어학자들이 모인 조선어 연구회가 주도한 '가갸날' 기념일입니다. 

 

세종실록에 기록된 내용에 따라 음력 9월의 마지막 날을 기념한 것이었습니다. 

 

이후 1930년대 양력이 보편화되고, 1940년에 발견된 훈민정음 해례본에 훈민정음 반포가 9월 상한에 이루어졌다는 기록에 따라 기념일을 변경하게 됩니다. 

 

광복 후 9월 상한의 마지막 날인 음력 9월 10일을 약력으로 환산한 10월 9일이 한글날로 확정되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훈민정음 해례본과 언해본 

훈민정음 해례본은 '훈민정음 원본'이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해례본은 1446년 한자로 출간된 일종의 해설서입니다. 

 

훈민정음을 만들게 된 계기, 의미, 사용법 등이 수록되어 있는데요. 

 

해례본이 발간되어 그간 한글의 제작 원리에 대한 무수한 가설을 잠재울 수 있었습니다. 

 

해례본은 발음하는 구강 구조를 본뜬 훈민정음 고유의 창제 방식에 대한 기록의 우수성을 인정받아 1997년에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되었으며, 판본으로는 최초 발견된 간송본과 경북에서 발견된 상주본이 있습니다. 

 

훈민정음 언해본은 위 해례본에서 일부분을 한국어로 번역한 것입니다. 

 

중세 한국어에서의 한글 사용법을 살펴볼 수 있는 아주 귀중한 가치를 가지고 있습니다. 

 

특이한 것은 해례본과 내용이 완전히 같지 않다는 것입니다. 

 

해례본에는 없는 '치음자'에 대한 규정이 추가되었습니다. 

 

또한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서문은 언해본에 수록된 내용입니다. 

 

한글은 원래 띄어쓰지 않았다. 

띄어쓰기는 본래 라틴어에서 사용되던 문법이었습니다. 

 

이 때문에 라틴어의 영향을 받은 서구권에서는 띄어쓰기를 사용했지만, 동양권에서는 특정 단어를 사용할 때 줄바꿈을 하는 것 외에는 따로 띄어쓰기를 사용했지만, 동양권에서는 특정 단어를 사용할 때 줄바꿈을 하는 것 외에는 따로 띄어쓰기를 사용하지 않았는데요. 

 

이 때문인지 처음으로 한글을 띄어 쓴 사람은 한국인이 아니라 외국인이었습니다. 

 

19세기 말, 한국을 방문해 최초의 한국어 성경인 예수셩교누가복음젼서를 제작했던 스코틀랜드 선교사 존 로스는 한국어를 배우며 만주에서 만난 함흥 출신 상인 이응찬과 함께 번역 작업을 했습니다. 

 

최초의 한글 띄어쓰기가 적용된 책은 존 로스가 1877년 편찬한 한국어 교재인 조선어 첫걸음이었습니다. 

 

존 로스가 영어 문법 체계를 한국어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띄어쓰기가 녹아든 것이죠. 

 

이후 최초의 한글판 신문이라고 알려져 있는 독립신문에서 띄어쓰기를 사용했고, 1933년 조선어학회가 공표한 한글 맞춤법 통일안에 띄어쓰기의 규정이 정립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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